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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kayla 작성일25-07-02 12:14 조회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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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사고 위치 지도화 무니페리, 김진희, 조한나A«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의 ‘타자로서 타자에게’는 섹션명처럼 타자를 중심으로 나를, 혹은 나를 중심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와 대상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전복시키고 서로를 타자로 인식하면서 만들어진 이 작품들은 결국 더욱 낯설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터뷰 3편에서는 무니페리, 김진희, 조한나A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폐허 안에서 시작된 사랑의 이야기를 되짚으며” 무니페리 작가무니페리 작가Q. ‹EL›에서는 근대기 아시아 여성의 정형성에서 벗어난 주인공들을 통해 재맥락화돼야 할 역사의 무게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맥락화돼야 할 역사의 무게’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궁금합니다.​작업의 제목인 ‹EL›은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Eternal Love’와 ‘Eternal Liminality’인데요. 이번 작업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이면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떠올랐을 때 사람들에게 주는 어떤 파장은 늘 담보된 효과인 것 같습니다. 짧게 요약해 말하자면 제 리서치는 만주국 시기에 중국 북동부에서 순회 공연을 했던 조선 악극단 여성의 삶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만주에서 공연을 하면 조선에서 버는 수입보다 3배의 이윤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들이 공연을 했던 극장 중 아직 남아 있는 곳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저는 ‘고국을 떠난 여성’의 다른 ‘챕터’를 보게 됐습니다. 중국 심양의 ‘신경기념공화당’ 바로 맞은편의 이전에 일본군 위안소였던 건물들이 현재는 폐허 상태로 남아 있었고 텍스트로만 읽던 이야기가 구체적인 공간으로 드러났다는 점,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여성’의 이야기에는 사실 잘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점, 하지만 그것들이 거의 기입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확한 사실, 신뢰할 만한 자료들을 집어내 다시 역사에 기입하는 것이 제가 원하는 것이었을까요?​이러한 질문의 힌트는 다시 이 대답의 처음으로 돌아와 ‹EL›에서 찾았습니다. 극 중에 ‘산새’라는 인물은 꽤나 사고 위치 지도화 히스테릭하게 계속해서 사랑에 대해서 말합니다. 의미가 정의를 초과하는 것이 사랑이며 (그러므로 ‘난 널 사랑해’는 아무런 뜻도 없다(『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그렇기에 계속해서 다시 말해주는 것, 그 언어의 굽이굽이와 수고스러움 자체가 사랑(『아르고호의 선원들』, 메기 넬슨)이라는 점에서 과거를 말하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장에서 했던 리서치는 탐사할 순 있지만 지도화될 수 없었던 공간(『길 잃기 안내서』, 레베카 솔닛)이었으며, 작가로서 저는 관객들이 지도화하지 않고 탐사할 수 있는 이야기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무니페리, ‹EL›(2025)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34분Q. 만주국 설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중국 선양의 랴오닝 호텔(구 야마토 호텔)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이 만주로 간 조선인들의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부연 설명 부탁드리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에서 촬영을 진행하면서 기대하신 효과가 있다면요?​랴오닝 호텔(구 야마토 호텔)은 일제강점기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에 의해 운영됐던 호텔 체인 중 하나로, 만주국 수립과 밀접하게 연관된 역사적 장소입니다. 특히 1932년 2월, 이 호텔에서 관동군이 주재한 회의에서 ‘만주국’의 고위직 후보자들이 결정됐고, 이후 만주국이 공식 발표되며 실질적인 일본 제국의 괴뢰국가 수립이 진행된 상징적인 공간입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단순한 철도회사를 넘어 만주국의 실질적 권력 중 하나로, 조선인 이주와 노동, 도시 개발, 문화 공간까지 깊게 관여한 존재였기 때문에 야마토 호텔은 역사·식민성·정체성이 교차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여자에 대한 픽션 비디오를 제작하려고 계획했던 제게 랴오닝 호텔의 촬영 허가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사실 여건이 허락되면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상징인 ‘특급 아시아호’를 전시해 놓은 선양 철도 박물관(沈阳铁路陈列馆)에서도 촬영하면 좋았겠지만, 촬영 허가를 받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 찾은 곳이 랴오닝 호텔이었습니다. 본인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난 당시의 여자들을 상상했습니다. 이동 수단은 뭐였을지, 어떤 전단과 소문을 듣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국의 땅에 왔을지, 해방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아니면 그곳에 사고 위치 지도화 정착해서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등등이요.​‹EL›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로 가지 말자고 장르를 정하고 시작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현실적으로 제가 있던 창춘과 선양에서 만주국 당시 조선인 여성들의 자료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 시대의 한국인 여성과 1930-40년대 조선을 떠난 여성의 이야기를 이어줄 수 있는 어떤 배경이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그것이 랴오닝 호텔이 됐고요. 호텔 자체가 역사가 켜켜이 중첩돼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기 때문에 부러 ‘큰 이야기’는 영상 안에서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점점 더 ‘작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무니페리 작가 전시 전경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Q. 페미니즘, 도교와 전통, 동아시아 퓨처리즘 등 아시아 정체성 전반에 대한 리서치를 해오셨는데요.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향후 계획하고 계신 작업이 있다면 그 방향성도 알려주세요.​작업의 계기는 처음에 만들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늘 사후적으로 오는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도교와 전통, 동아시아 퓨처리즘은 한두 해 하고 마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라 아마 평생 풀어야 할 숙제 같은 것이고요. 그래도 굳이 이런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 계기를 몇 가지 찾아보자면, 지난 몇 년간 동아시아인으로 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사회적/문화적 차원에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상실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 철학의 유현한 바탕인 도교를 그래서 공부하게 됐고요. 그리고 동아시아 *코스몰로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근미래의 이야기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히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SF는 기술의 진보로 말미암은 유토피아적/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서구의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그리고 페미니즘은 제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늘 끼고 있는 어떤 렌즈인 것 같습니다. 열대기후에서 자란 나무가 본인은 침엽수이고 침엽수의 체화된 몸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제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고 또 사고 위치 지도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 안에서의 여자들의 관계, 여자들의 상황, 여자들의 목소리에 자연히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말했지만, 그저 (도대체) 왜? 라는 질문을 계속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그간 해왔던 리서치의 연장으로 한국 무속신앙에 대한 리서치를 슬슬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리서치에 대한 시급성을 점점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K’가 앞에 붙어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전통들, 굿즈화 돼가는 과거들, 인터넷에서 떠도는 카더라 통신 같은 이야기들로 소환되는 한국의 무속은 사실 유불도교 이전부터 있었던 가장 오래된 토속 종교로, 그 안의 고유한 체계와 *코스몰로지가 있는데 저를 포함한 우리들은 그것들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하여 한국에 몇 달간 머물며 또 이것저것 주워들으러 열심히 다니지 않을까 합니다(하하).*코스몰로지: 우주론​​​“보편이라는 환상, 그 균열에서 보이는 사소함에 대해서” 김진희 작가​김진희 작가Q. 기존 작업에서는 타인의 시선 속에 놓인 자신을 상정했다면, 신작에서는 집 안이나 발코니, 방 안의 책상 등 사적인 공간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공간의 변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변경되기도 했나요?​이번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서 보여지는 공간은 단순히 ‘사적 공간’이라기보다, 어쩌면 일상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는 일종의 무대처럼 작용합니다.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거나, 담배불을 끄는 손짓, 물 한 잔을 마시는 동작처럼,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행위들이요. 그런 반복적이고 무게 없는 일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이루는 작은 조각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이전 전시 «Drink Water»(2024)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다뤘습니다. 다만 그때는 마트나 버스정류장, 수영장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공의 장소를 골랐죠.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누구를 설명하지도 않는 공간들이요. 그런 곳에 인물을 던져 놓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둘러싼 외부 지표들이 정말 유의미한 것인지 한 번쯤 되묻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관찰의 시점이 외부에서 내부로, 그리고 타인에서 나 자신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적인 공간이라고 해서 사고 위치 지도화 온전히 ‘나’의 공간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지는 않거든요. 의도적으로 묘사를 피하고 원통의 몸과 고전 회화의 구도 등을 차용해 오히려 보편적입니다. 여기가 특정인의 집이 아니라 그 누구의 집이라도 괜찮다는 방식입니다.​이쯤에서 저는 종종 ‘보편’이라는 말이 가진 애매함을 생각하곤 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보이지만, 정작 그 보편의 범주에서 배제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사적인 공간조차, 사실은 어느 누군가의 기준이 덧씌워진 익숙함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익숙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가가기 어려운 풍경, 익명성을 띠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구조. 저는 화면에 극적인 색감과 구도를 통해, 그러한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행위의 언저리에 작은 긴장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는 관람객에게 어떤 특정한 감정을 유도하려 하진 않아요. 다만 어딘가 익숙한데 낯설고 잘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 그런 어긋남의 틈에서 각자가 자신을 대입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김진희, ‹바라보는 일›(2025)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180×150cmQ. 익숙한 듯하지만 모호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주로 등장하는 회화 작품을 제작해 오셨는데, 이렇게 인물을 묘사하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신작에서 인물과 사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제 그림에서 인물은 특정한 성별이나 인종 같은 외형적 단서를 삭제한 채 등장합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성을 지향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보편성이 얼마나 환상에 가깝고 균열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선택입니다. 실제로 제가 그리는 인물들은 관람자들에게 일종의 거울처럼 작용해 누군가에겐 그 인물이 자기 자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오히려 굉장히 조형화된 인체로 인해 누군가에겐 계속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어요.​그건 사물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게 없는 것들›(2025)에서 서랍을 열고 있는 인물처럼, 일상적인 행동을 하고 있지만 그 행위의 맥락이나 목적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요. 손에는 작은 쿠키 하나를 들고 있죠. 특별한 상징이라기보다는, 정말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사소한 것. 예전 작업에서도 서랍을 여는 인물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서랍 사고 위치 지도화 안을 끝내 그릴 수 없었어요. 서랍은 제게 중요하거나,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이 모여 있는 장소처럼 느껴졌거든요. 혹여 그 안을 꺼내 보여주는 순간, ‘내’가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거나 아직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이 오해될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쿠키처럼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 자체로 화면 속에 남겨두고 싶어졌어요.​저는 인물과 사물을 통해 어떤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지는 않아요. 회화 안에서 그저 은근한 긴장을 품은 채 비슷한 질량으로 공존하길 바라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많은 장면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잖아요. 눈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감정과 감각, 의미와 배경이 선명하게 나뉘지 않는 상태. 제 회화도 그 어딘가에 머물러 있길 바랍니다.​김진희 작가 전시 전경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Q. 이번 작업에서도 인물을 조명하는 빛의 활용이 돋보입니다. 빛을 통해서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제 작업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장면을 구획하고, 리듬을 분할하고, 때로는 시선을 비껴가게 만들죠. 화면의 조형적 긴장과 서사 구조를 구성하는 주요한 장치로 작동하는 식입니다. 이전 작업에서는 연극적인 조명을 많이 활용했어요. 하지만 그 조명이 꼭 인물에게만 집중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물은 빛을 등지거나, 강한 역광 안에 놓이기도 하면서, 빛의 중심에서 약간씩 밀려난 상태로 그려지곤 했고요.​서사로 시작된 이미지가 빛을 통해 조형으로, 다시 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 저는 가장 많은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매 작업마다 유기적으로 다르게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선보인 작업 중 하나인 ‹바라보는 일›(2025)에서는 건물 외벽의 타일을 표현한 그라데이션이 강하게 등장하는데,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인물과 함께 조형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또 다른 주체로 작용합니다. 인물과 같은 색으로 처리된 타일은 때로는 반복적인 색면 패턴처럼 보이고, 때로는 빛에 의해 만들어진 명암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처럼 모호한 전환을 통해 조형의 리듬과 긴장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제 작업에서 실험적인 지점이 되곤 합니다.​​​“우리 사고 위치 지도화 모두의 기억이 담긴, 가장 보편적인 다큐멘터리” 조한나A 작가​조한나A 작가Q. 이전작 ‹퀸의 뜨개질›에서는 뜨개질을 매개로 할머니의 삶과 작가님의 성장기 과정을 교차시켰고, 신작인 ‹우리 단지›에서는 작가님의 고향인 여수를 바탕으로 작업을 진행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서사에서 출발한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저에게 ‘개인적인 서사’란 단순히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읽히고 연결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제 작업은 일상적인 장면과 개인적인 기억을 통해 불안정한 정체성과 삶의 흔적들을 탐구하는 일종의 ‘사적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어요. ‹퀸의 뜨개질›에서 할머니의 삶과 나의 성장기를 교차시킨 것도, ‹우리 단지›에서 고향 여수를 다룬 것도 결국 ‘나’라는 화자를 중심으로 한 주관적 성찰을 통해 사회적 주체로서의 나를 재현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으로 확장되고, 관객과의 공동의 기억이나 경험을 매개로 공감과 연대의 장이 열리기도 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개인과 집단, 기억과 기록 사이의 경계를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경험도 결국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아 또 다른 자신의 삶을 비춰보고,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조한나, ‹우리 단지›(2025)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24분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다양한 경계에 선 사람이란 어떤 이들을 의미하는지, 이들이 느끼는 가능성의 한계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우리 모두는 경계에 서 본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의 경계, 사회적 위치의 경계, 지리적·심리적 경계 등. 중심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에너지와 언어를 요구받기도 했죠. 저 또한 여러 경계에 놓여 있는 한 사람으로서, 언제나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사이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고민하고 있습니다.​경계에 서 있을 때 느끼는 가능성의 한계란 사고 위치 지도화 이런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경험이 이야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침묵의 강요, 말할 수 없음에 대한 두려움, 혹은 말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 같은 것이요. 이러한 감정들은 종종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고, 앞으로의 나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제한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러한 불안정한 자리에 있는 순간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작업하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서사가 작품이 돼 수많은 경계 위 사람들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관람객들은 어쩌면 마음 한 구석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경계 위에 있고, 그 경계는 곧 새로운 서사와 이야기와 가능성이 시작되는 자리일 수 있다는 거죠.​조한나A 작가 전시 전경사진: CJY ART STUDIO_조준용Q. ‹우리 단지›에 등장하는 여수의 산업단지는 지역민들에게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임과 동시에 생계의 중심이라는 양가적인 장소로 보입니다. 개인과 사회 사이의 긴장과 접점을 어떤 방식으로 작업에 드러내고자 하셨나요? 작가님에게 ‘여수’는 어떤 의미를 지닌 장소인지도 궁금합니다.​여수산단을 생각하면 양가적인 감정이 교차해요.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산단에서 근무했고, 그들은 집에서는 좋은 아빠, 돈 잘 버는 아빠였죠. 이번 작품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만난 노동자의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무섭죠. 그런데 아빠니까. 아침이 되면 다시 신발 끈을 묶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죠.’​저는 ‹우리 단지›에서 양가적인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선 저부터 고향이라는 공간으로 회귀하며 놓이게 된 양가적인 상황이거든요. 서울사람도 여수사람도 아닌 정체성이 있어요. 과연 ‹우리 단지›는 제 이야기일까요, 사람들의 이야기일까요? 생계를 위해, 예컨대 노동과 돈을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 이 이야기는 작품에 등장하는 자막처럼, ‘나의 친구, 옆집 오빠, 이웃 아저씨가 생각이 나서’ 시작하게 됐습니다.​여수는 저의 고향이고, 저를 만들어 낸 곳이고, 부정할 수 없는 저의 일부분이에요. 여수를 떠났을 때 엄청 후련했어요. 그런데 서울에서의 어느 날, 이제 더 이상 폭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지더군요.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다시 여수행 티켓을 끊고 사고 위치 지도화 있었어요.​